2023년 1월 7일 09:00 화령재 10:17 윤지미산 11:42 무지개산 12:57 신의터재 13:30 출발 14:52 지기재 15:44 개머리재
화령재는 고도가 320m이고, 윤지미산은 538m, 선의터재는 280m이라 동네 뒷산을 오르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 곳은 기억해야 할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2023년 첫 백두대간 산행으로 해밀산악회 지원팀에서 신의터재에서 떡국과 오뎅탕으로 점심을 제공해 주고 12월의 추운 날ㅆ는 어디로 가고 봄같은 영상의 날씨에 어제 밤에 내린 눈을 밟으며, 야산을 트래킹하는 산행이라 여유롭다. 한시간 정도 오르니 무지재산이 나오는데 표지석이 둘이다. 예전에는 돌탑위의 표지석뿐이였는데.... 무지개산도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그러나, 이 구간은 눈이 와서 그렇지만 조망도 없는 야산이라 뚜벅 뚜벅 걸어갈 뿐이다. 신의터재에 도착하니 점심이 준비되어 있어 허기를 채우고 개머리리재로 출발한다. 선의터재에서 개머리재간의 구간은 낮은 구릉지대라 예정보다 빨리 도착한다. 화령재 ~ 신의터재 구간은 세번째로 올 때마다 상당히 다르다, 처음엔 2011년 7월3일인데 장마기인데 신의터재에서 화령재 올 때에는 비오전 무더운 날씨라 윤지미산에 모두들 지쳐 누웠는데 화령재에서 아침을 먹고 나니 폭우가 솥아져 개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고 2013년 1월 13일 남진을 했을 때는 추웠는데, 이번에는 따스한 날씨에 눈꽃 산행을 하게 되어서 아주 좋았다.
다음 차수는 구정이라 2월 첫주의 다음구간을 기대해 본다.
화령장 전투는 1950년 7월 한국전쟁기 국군 제17연대와 국군 제1사단이 상주 북부의 교통중심지인 화령장에서 남하하는 북한군 제15사단을 격퇴한 전투로 북한군 제15사단은 2개 연대가 괴멸되는 참패를 당했으며, 병력과 장비의 대부분을 상실하였다. 또한 이 전투는 소백산맥의 험준한 지형을 뚫고 상주를 점령한 후 일거에 대구로 진출하려는 북한군 전선사령부의 계획을 좌절시켜 낙동강 방어에 기여한 전투이다.
신의터재: 임진왜란 이전에는 신은현(新恩峴)이라 불리다가 임진왜란 때 최초의 의병장인 김준신(金俊臣)이 의병을 모아 큰 공을 세우고 순절한 후부터 신의터재라고 불리었단다. 일제 때 ‘어신재’로 개명되었으나 광복 50주년을 맞아 옛 이름을 되찾았단다. 소공원이 조성돼 있으며 김준신을 기리는 유적비가 세워져 있다.
[화령장 전투 내용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화령장전투(化寧場戰鬪))]
화령장은 경상북도 상주군 화서면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보은과 괴산에서 상주로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북한군 제2군단은 음성∼괴산 방면으로 남하한 제15사단을 상주 점령을 위해 화령장에 투입하였다. 북한군 제15사단은 7월 10일 음성을 점령한 후 보은 및 괴산∼상주 방면으로 남하하였다.
육군본부에서는 국군 제6사단이 담당하고 있는 문경지역의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작전명령을 제1군단에 하달하여 제17연대를 제2군단에 이동시켰다. 이 명령에 따라 국군 제17연대는 제1군단에서 제2군단으로 배속이 변경됨과 아울러 17일 함창으로 출발하였다. 이동 중 북한군의 이동상황을 확인한 제17연대 제1대대장은 부대를 화령초등학교에 집결시키고, 지역상황을 연대장에게 보고하였다. 이때 이동하던 북한군은 제15사단 제48연대였다. 이 부대는 도보부대와 더불어 40여 대의 우마차에 각종 포와 탄약을 실고 남하하여 상곡리 일대에 주둔하였다. 이에 따라 국군 제17연대는 북한군을 공격하였다. 17∼18일 양일간에 치열하게 전개된 전투에서 국군 제1대대는 북한군 250여 명을 사살하고 30여 명을 생포하였다.
한편 7월 19일 제17연대장은 북한군 제45연대가 후속하여 화령장으로 접근하는 것을 포로의 노획문서를 통해 알았다. 이에 제17연대장은 화령초등학교에 대기 중이던 제2대대를 봉황산에 진출시켜 매복공격을 감행하기로 하였다. 제2대대 병력은 화령장에서 봉황산을 넘어 동관리로 진출하고 예비인 제3대대는 제2대대 좌측인 장자동으로 이동하였다. 7월 20일 오전부터 시작된 공격은 오후 2시까지 치열하게 전개되어 제2대대는 북한군 350여 명을 사살하고 26명을 생포하였다.
북한군 제15사단은 예하인 제45연대가 동관리 일대에서 기습을 받고 큰 타격을 입자, 동관리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에 따라 국군 제17연대장은 북한군이 전면공세를 취할 경우 이를 막아내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군단사령부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군단에서는 제1사단을 화령장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7월 22일 오전 화령장으로 이동한 제1사단은 예하 11, 12, 13연대 3개 연대를 화령장 부근에 전개한 후 갈령 고개 북방으로 북한군을 격퇴하기로 하였다. 7월 23일과 24일 제11연대는 갈령 부근에서 북한군을 공격했고, 23∼25일 제12연대는 장자동 부근에서 북한군과 격전을 치뤄 결국 북한군을 격퇴하였다.
국군 제1사단과 제17연대가 화령장 부근에서 북한군 제15사단과 교전을 벌이고 있던 7월 24일 제1군단에서는 작전지역을 미군에 인계하고 안동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림으로써 화령장 전투는 끝났다.
평가
화령장전투에서 북한군 제15사단은 2개 연대가 괴멸되는 참패를 당했으며, 병력과 장비의 대부분을 상실하였다. 또한 이 전투는 소백산맥의 험준한 지형을 뚫고 상주를 점령한 후 일거에 대구로 진출하려는 북한군 전선사령부의 계획을 좌절시킨 의미 있는 전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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